20211225LINK예수성탄
성경 : 요1:14-16
제목 : 은혜위에 은혜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세례요한은 성탄을 통한 성육신을 은혜위에 은혜라고 선언합니다. 은혜(카리토스)는 구약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율법의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말합니다.
은혜(카린)은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와 진리입니다. 복음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고 하나민의 자녀 삼으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약속과 기록된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입니다.
지금 성탄을 기뻐하며 예배하는 우리는 이런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입은 자들 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확증해 주십니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은혜위에 은혜를 입은 자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면서 갈5: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왕으로 영접하면 내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서로를 예수님을 닮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사라내는 것이 성탄의 의도입니다.
AW토저는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 사는 존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부분과 영역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려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드려야한다.
일을 하다가 늘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아,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려고 하시지!’라고 의식적으로 떠올리십시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복음을 체험하기 전에는 살기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고 위협적이고 율법의 교만 때문에 많은 사람을 정죄하고 조롱했습니다. 분노로 상처 주며 산 인생입니다. 그러나 강력한 은예위해 은혜를 더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이후는 바울은 완전히 변합니다. 육의 사람이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율법의 사람이 복음의 사람으로 완전 변화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은혜위에 은혜를 입은 사도바울의 큰 변화는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격려할 때나 위로하거나, 마남으로 교제하거나, 공감하고 배려를 할 때도, 한결같은 생각과 마음은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위에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허물 뿐인데 죄뿐인데 상처와 약함뿐인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화평을 주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심은 무엇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9:7절에 하나님의 열심 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못 말리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은혜위에 은혜를 입은 자들인 우리에게 화해의 직책을 주셨습니다.
화해의 직책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은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까지 복종하심, 나를 위해 그것도 나의 허물과 죄를 대신 죽음으로 담당해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죽어 주신 분계신가요?
예수를 죽게 한 원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형용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값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화해는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으로 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 입은 사랑 그리고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만 할 수 있습니다. 용서 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면 아직 예수를 믿고는 있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을 내가 품지 안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