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본다면 세상에는 예루살렘 성과 시온 산 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과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유독 예루살렘 성과 시온 산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놀랍고 여기고 귀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곳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곳,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던 곳이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임재 했더라.”에 만 머물기를 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다.
영원한 나의 하나님이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인도 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라는 밀착된 연합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과 함께 호흡하고, 예수님의 숨결을 느끼고 친밀한 사귐이 있는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바울 통해 오늘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는 “하나님이 임재 했더라.”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내안에 임재하고 계신다.”에 눈떠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현재성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인식하고 눈을 뜨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들어 주체 할 수가 없어서 눈물만 나기도합니다.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입니다.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이렇습니다.
여러 가지 회개의 합당한 열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힘이 있게 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날카롭게 역사 합니다. 우리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합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드러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머물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었다더라" 하는
'하더라.'의 십자가로 살 것입니까? '남의 십자가'를 버리고 '내 구속의 십자가'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야합니다. 언제까지 부모님의 신앙고백으로 사시렵니까? 이제는 나의 신앙고백으로 살아야합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은혜로 기도로 살렵니까? 이제는 내가 받은 은혜로 나의 중보와 예배로 살아야합니다. 언제까지 묻어가시렵니까? 언제까지 “하나님이 임재 하였더라.”로 살아가시렵니까? 이제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눔 : 한 주 동안 지금 임재하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어떻게 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