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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모양이라도 버려야합니다.(살전5:22-24)

지난주에도 말씀도 그러하고 오늘 말씀도 그러합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이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고, 바울에게는 기도 할 때마다 감사의 대상이 되고, 그 당시 모든 교회에 모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다시 세우셔서 공중에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과 항상 함께 있을 모습을 영적인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삶이 너무 힘들 때도 영적청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렵고 극한 고난이 와도 영적 청사진을 보면서 위로와 힘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모습이 모든 교우들에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도전이 되고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 청사진처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 영과 혼과 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만들어 주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전5:23-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니까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씀일까요? 안입니다.

<살전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말씀하십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이 미국에 이민 갔습니다. 있다 보니 법적 절차를 따라서 시험도보고 인터뷰도 하고 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인데 여전히 한국에 했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식사를 한 것 같고, 칼하고 얼큰한 것을 먹어야 속이 개운 한 것 같고, 요즘 같으면 부글부글 끓는 뚝베기에 청국장이 간절히 생각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는 예수를 구세주 믿어 죄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안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의인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거룩한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예수 믿기 전에 죄의 습성이 아직 버리지 못한 악의 모양으로 있습니다. 자꾸 거짓말합니다. 시기하고 원망합니다. 불평하고 핑계합니다. 분을 내고 화를 냅니다. 자꾸 고집을 부립니다. 열등감과 우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음난 탐욕 그리고 흡연 음주로부터 메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불신합니다. 나는 이해 된 것 만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소멸합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신의 뜻을 고집합니다. 자꾸 불란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어떤 악의 모양을 취하고 계십니까? 저 역시 자유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우리는 악한 모양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내안에 있는 악의 어떤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을까요?

마치 앞에 여승무원처럼 우리도 평상시에도 <주님의 재림이 오늘 이다>라는 재림신앙과 종말론적 신앙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성령님의 조명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보게 하시는 내안에 있는 악한 것들, 악한 모양들이라도 어린양의 피를 뿌려 씻어내는 회개를 합니다.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구속사적 해석에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순종하는 훈련을 합니다.

어느 자매님이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얼굴이 너무 가려워서 잠이 깼는데 아무리 긁어도 낫지 않고 얼음찜질을 해도 낫지 않아서 울고 싶어졌습니다. “주님, 얼굴 가려운 것을 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래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씀묵상 했던 구절이 생각이 나왔습니다. 시편 23편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외처 선포하는 순간 감쪽같이 가려운 증상이 사라져버리고 잠이 잘 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장 집사님이 질문했다. “가려운 증상을 고쳐달라고 기도했는데 안 낫고 말씀묵상구절을 선포했더니 나았습니다.

도대체 말씀묵상과 기도가 어떻게 다른 거죠?”

“바로 말씀묵상선포가 진정한 주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우선 내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하게 되는데 문제가 생긴 순간에 우리가 먼저 취해야 될 태도는 내 소원과 생각을 빨리 태우고 먼저 주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장 집사님께서 간지러움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하셨을 때 그 요청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직 아니다’라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간지러움 증이 고쳐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사님께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 묵상한 구절을 선포하심으로써 순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태우고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분명히 간지러움 증은 신체의 부족함의 현상이었음에도 집사님은 여호와께서 목자 되시므로 부족함이 없다며 자신의 생각을 태우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드리자 주님께서는 즉시로 간지러움 증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말씀묵상을 선포야말로 진정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정의는 내 뜻을 태우며 주의 뜻을 구하며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예배 시작송의 가사가 이러합니다.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내 뜻과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 엎드려

주님의 음성 기다리니

나를 부르실 때 믿음으로 걸어가리.

내 생각 내 뜻을 불태우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으로 내 생각을 태우면 주님의 생각이 일합니다!

말씀묵상으로 우리의 육신의 시선을 태워야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시선을 주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시선을 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뀝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 없이 사는 아십니까? 심령이 우울하고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을까요?

우리가 현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시선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 렌즈가 흐려졌기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반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각막에 영적 백내장이 여려가지 질병으로 인한 합병증로 오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죄를 짓고 방치하거나 무시하면 오는 영적합병증으로 자기 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묵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영적 녹내장(안압 때문에 시 신경이 손상으로 오는 초점을 맞추지 어렵고, 시야가 좁아지고, 안구토증과 두통에 시달립니다. 그런 자각증세가 없습니다. 갑자기 녹내장이 옵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성질을 내고 분을 토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서 마음의 압력이 심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시신경에 손상이 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정확이 초점을 못 맞춥니다. 영적시야가 좁아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므로 늘 삶에서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영적 백내장과 녹내장을 치료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레이저로 각막부분 절개하고 혼탁한 수정체인 악의 모양을 빼내고 성령님의 말씀의 수정체를 넣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말씀묵상을 즐겨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영적녹내장은 생명의 말씀 평강의 말씀으로 영적안약을 넣어서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을 달라고 구해야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적용 :

당신은 악의 어떤 모습을 취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영적 백내장은?

영적 녹내장은?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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