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청사진(살전4:13-18)
오늘 소개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영적 청사진이 분명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했습니다.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복음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살전4:1절 말씀처럼 어떻게 행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를 우리를 즉 바울과 동역 자들의 삶을 통해서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3주 정도 짧은 기간 동안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립니다.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시기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유대교 사람들이 불량배를 동원해서 극렬한 핍박을 합니다. 특별히 바울과 동역 자들을 핍박합니다. 핍박을 피해 아덴으로 피합니다. 바울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핍박에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하면 어떠나? 복음으로 잘 견디고 있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동역자 디모데를 보내 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위로 하지 위해 보냅니다. 그런데 굉장히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소식들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살전1:2-3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3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한 일들과, 사랑으로 행한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소망을 지켜 가는 모습을 보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습들이 마케도니아 지역에 교회의 상도들과 아가야 기역에 있는 교회에 사는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3주 만에 짧은 기간 동안에 탄생한 교회입니다. 신생교회입니다. 그런데다 상황은 불량배를 동원한 유대교 사람들의 핍박이 있습니다. 지역으로는 물질주의 팽배하고 성적타락 문화가 성행한 곳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돈을 벌 수 있는 상권을 포기해야합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지역 공동체에 왕따를 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통해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동력이었을 까요?
그것은 <세메이온>입니다. 영적 사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큰 그림을 보게 하고, 하나님 나라로 우리 여정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에 이른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이 그들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인내하고 복음으로 순종하고 견디게 하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세메이온 입니다.
오늘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 하나님나라의 청사진을 보여주심으로 먼저 복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수고가 계속 될 수 있도록 하게 합니다. 당시의 수많은 핍박의 현실을 성도들이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어디쯤 와있구나, 이 어려운 고난을 이겨내고 나면 장차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되겠구나.’ 하는 걸 알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서 각장마다 하나님 나라 청사진 세메이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10절 그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노여운 심판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2장에서 <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3장<13그러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이 서게 될 것입니다.>
4장<16그 날에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큰 소리로 호령하실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후에 살아 있던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하늘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5장에서 주님의 재림의 시기와 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듯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계속적으로 세미니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세메이온> 즉 <하나님나라의 청사진>을 확실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세져 지지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어려움들에 무너지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야 될 이유를 발견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좁은 현실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 하나님나라 청사진을 볼 수 있고 우리의 심령에 확실하게 세져지게 된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신앙생활은 영적인 청사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상 교회와 달리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그 어린 양의 피로써 악한 모든 것들이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바
라 볼 수 있는 영적 청사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눈, 하나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영적 청사진으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 혹은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영적 청사진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매일 좌절하고 낙심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적 청사진을 회복하면 시선 교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육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깨지고 싸우고 분열되고 갈라지는 교회의 모습만
보게 됩니다. 오늘날의 지상 교회를 보면 한마디로 지리멸렬(支離滅裂)이라는 단어밖에 안 떠오릅니다. 그런데 영적 청사진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영적 청사진이 없을 때는 교회는 맨날 밀리고 쫓기고 어려움 당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으로 영적 청사진이 회복되면 뒤에 광야가 그를 양육하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적 전쟁은 이런 식이다. 사탄은 우리를 비참한 실패의 자리로 내몰고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초라한 실패의 자리, 쫓겨난 광야의 자리에서 우리를 영적으로 양육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청사진을 회복하면 시선 교정이 이루어지고, 시선 교정이 이루어지면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첫째, 현실의 두려움과 맞설 담대함이 생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금까지는 절망적인 이 땅만 보였는데, 지금까지는 로마 군인들에게 끝없이 밀리는 지
상 교회만 보였는데, 하나님의 천상 교회에서의 승리를 바라보며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찬양을 다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근심이 없어진 게 아니다. 여전히 두려움이 있고 한숨이 있지만 영적 청사진을 통해 보는 하나님의 시선이 회복하면 그 두려움에 맞설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 찬송가의 가사처럼 전날의 한숨에 맞설 신령한 새 노래가 회복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안 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기도를 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영안이 열리니 하나님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분께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영적 청사진으로 보면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현실의 지상 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절망적인 것 같다.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기에 우리는 더욱 영적 청사진으로 교회를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성도들만 보입니까? 그렇다면 돌아오는 건 상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은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만 보인다면 상처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불안전한 교회를 주관하시는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적용 :
당신에게 영적청사진이 그려집니까?
영적청사진을 통해 현 자신의 모습을 볼때 어떤모습입니까?
버려야 할 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해결 받아야할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