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은혜가 넘치십니까?(요12:1-9)
선교사 부인인 최 수현 사모가 내 인생은 주님의 것이다. 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전의 나는 쇼핑광, 여행광, 결벽증 환자였던 그녀 워낙 씀씀이가 커서 큰손으로 통했고, 대치동 아줌마들에 교육열도 뒤지지 않았던 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내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계셔야 했고, 내가 사는 동안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했던 그녀 남편이 선교사로 헌신한다고 했을 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끌어내리려 했던 그 중국에 선교하러 온 지도 어느덧 16년이 흘렀지만, 나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른다. 면서 <나는 ‘죄의 노예’로부터 ‘의의 노예’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면서 그런 내가 지금 그저 은혜로만 살고 있습니다. <‘주님 먼저, 나는 나중’>이라는 교훈은 이제 나의 삶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먼저이다 보니 나의 관심사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쇼핑이 골치 아파지고,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여행에 관심이 없어졌고 노후를 위해 뒷주머니를 챙겨두겠다는 마음이 사라졌고 성공을 좇는 자녀교육관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계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예수님 먼저, 다른 사람들이 두 번째, 나 자신은 맨 나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은혜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해서 가슴이 떨립니다.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의 2단계가 시작됩니다. 마치 벼가 익어가며 고개를 숙이듯 겸손해지는 단계이다. 내 안이 예수님으로 채워지고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은 갈망과 사모함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발견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조차 낯간지러워집니다.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주께서 나를 더 기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빚진 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됩니다. 주님께 이토록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을 위해 일어나겠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3단계이다. 이제 은혜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빚진 자가 되고 이것을 갚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나눔 : 당신의 은혜는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유독 한사람을 우리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돈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바리새인도 아니었고 상류층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오히려 매우 낮은 계층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가정출신이 아니라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3남매만 모여 사는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환경적인 어려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리아의 가정은 평탄한 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니까 그 가정의 희망이었던 오라비 나사로가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시험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마리아의 가정에 예수님이 찾아가고 그분이 은혜를 부어주시니까 이 가정만큼 큰 은혜를 맛본 가정도 없더란 말입니다. 요약하면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리 큰 시험과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은혜가 부어지기만 하면 그 모든 시험과 어려움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마리아는 충적적인 헌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건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 엄청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뿌리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마리아는 많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평소 베다니에 자주 오시던 예수님에게서 말씀을 경청해 들었습니다. 깊은 말씀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음에서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의 과정을 거치며 마리아는 마침내 예수님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친 여인이었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300데나리온의 향유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엄청나게 비싼 것으로 아깝게 보였지만, 마리아는 은혜를 충만히 받았기 때문에 그 300데나리온이 예수님께 드려질 귀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깝지만 마리아가 볼 때는 기쁨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눔 : 당신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은혜를 경험했는가? 은혜 받은 후 당신의 삶은 어떤 변화가 왔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맛본 사람이 섬기는 것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섬기는 것은 다릅니다. 은혜를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기도를 해도 저 사람은 지나치게 기도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열심을 보고 ‘저 사람은 지나치게 열심을 내는구나, 다른 사람이 헌금하는 것을 보아도 ‘저 사람은 지나치게 헌금을 많이 해’ 하며 <모든 것이 다 지나치다>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들이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다 아까워 보이고, 지나치게 보이고.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섬기는 봉사, 바치는 시간, 드리는 예물이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쁨 가운데 헌신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은혜 받은 기도는 절대 기도 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지 않고 헌금을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헌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풍성할 수 없습니다. 인색합니다. 자기가 가진 향유를 절대로 다 부을 수가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합니까? 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을 볼 때 누구에게나 다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험에 넘어집니다. 누가 시험을 이기는 줄 아십니까?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을 수 있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이 참을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비난에도 극복합니다.
나눔 : 당신은 받은 은혜로 사역하십니까? 받은 은혜로 가정을 살피십니까? 받은 은혜로 직장의 일을 하십니까?
그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은혜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실 때에 받습니다. 내 죄에 대한 값없는 용서가 은혜입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에 대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나를 용서해주신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