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QT sharing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2
목장 QT sharing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2(겔33:7-9)
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인가?
성령님의 가르쳐주신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 주신 말씀의 지혜로 공급해주시는 은혜로 서로 섬기십니까?
성령님이 주신 말씀의 감동으로 예배하고 찬양하십니까?
이런 질문에서 교회가 실패하는 이유는 영적 조급증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교회에 적용됩니다. 교회의 진로는 성령이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의 힘은 성령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들을 사람들이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처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기도하고 기다리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조급증을 냅니다. 여기서 생기는 부작용이 오늘날 교회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모든 교회가 성령이 결정하게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는 성령으로 일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송죽교회가 그런 교회 중에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족속의 파수꾼으로 삼겠다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에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너를 통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경고를 무시하고 듣기 안음으로 죽는 것은 메시지를 무시한 자기 탓이다. 그러나 네가 전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경고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만약 네가 그들에게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도록 경고하지 않으면 그들이 자기 죄 때문에 죽었지만 그들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네게 묻겠다. 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그들에게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도록 경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치지 않으면 그들은 죄 때문에 죽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네 목숨을 보호 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너를 말씀의 파수꾼을 세운 이유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위해서 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드려내고 있습니다.
<겔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
하나님이 에스겔을 말씀의 파수꾼으로 세운 이유는 그들을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안에 임했습니다. 마치 오순절에 성령 충만 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가정에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직장과 일상에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서로가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함께 순종하게 하지 위해서 우리를 성령의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게 하시려고 오늘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겔33: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
에스겔서는 계속해서 <여호와의 말씀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하면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능력 있습니다. 운동력 있습니다. 날선 검 보다 더 예리합니다. 우리의 영과 혼 그리고 육을 찔리기도 합니다. 악한 것을 쪼개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려내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은 완벽합니다. 완전하십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듣는 우리 귀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듣는 귀는 이렇게 연약합니다. 우리의 듣는 귀는 우리의 심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상처가 있고, 악한 의도가 있고, 음흉한 것을 품고 있고, 미움 시기 질투 원망 욕심, 자기 고집, 편견으로 가득 채워 있으면 듣는 귀도 그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듣는 귀는 우리의 마음상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계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려번 반복해서 강조하십니다. 듣는 귀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팬입니까? 제자입니까?> 라는 책에서
어떤 사람이 무리인가?
❶ 무리는 복음을 들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다른 목적을 추구합니다.
❷무리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❸무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듣습니다.
❹무리는 입술로는 신앙고백을 하지만 심령은 세상적인 것 악의 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심령의 상태에서 말씀을 들으니 그 말씀이 온전하게 들이겠습니까?
말씀의 운동력을 경험 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에 찔리기도 안습니다. 악한 것을 쪼개내기도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려내지 못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죄인을 깨달 수 있겠습니까?
회개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❶ 제자는 자기를 부정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내 뜻이 틀릴 수 있어 하고 100% 죄인 것을 인정합니다. 이런 죄악의 본성이 성령의 역사로 회개 하면서 내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듣게 해달라고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❷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멸시와 핍박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과 멸시와 핍박은 우리 육신의 성향이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향을 억제하고 또 이러한 성향과 영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시작된 구원의 은혜가 완성되기까지 경건의 훈련을 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은혜의 수단을 붙잡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성령님의 전적인 인도를 구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면서 겸손과 인내로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게 하는 것에 순종합니다.
먼저 나를 하나님께 온전히 위임해야합니다.
<겔33: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대신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임해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라는 말씀에 온전히 지배받게 됩니다. 이때 성령님을 대신하여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성령 충만을 기도합니다. 너무나도 귀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성령 충만을 주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으로 성
령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성령 충만’이란 단어는 19번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없는데, 그들이 성령 충만해졌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내가 성령에 의하여 온전히 지배당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성령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렵고 힘들지만 성령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는 믿음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이 나를 지배하시고, 그 일들을 이루어 기실 것입니다. 이때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적용 나눔:
당신은 영적으로 조급함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당신이 일상에서 대화하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말씀을 잘 듣기위해 마음의 상태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무리들의 상태?
제자들의 상태?
당신은 성령의 전적인 지배를 받기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내어드리는 것일까요?
당신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는 경험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