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sharing 예수그리스도께 LINK된 우리 가정
Q.T sharing 예수그리스도께 LINK된 우리 가정(겔47:6-12)
오늘 보문 말씀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예수 가족이 될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회복된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첫 번째로 그 물에 건너게 할 때는 발목에 닫았습니다. 두 번째로 건너게 할 때는 무릎까지 닫았습니다. 세 번째로 건널 때는 물이 허리까지 올랐습니다. 네 번째로 건널 때는 그 물이 가득해서 헤엄 칠만한 물이요, 능히 넌지 못하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납니다. 바닷물이 살아납니다. 고기가 심리 많아집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앞전에서 잎만 무성했던 나무에서 열매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달마다 새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잎사귀는 치료하는 악재가 된다 합니다.
이 모습을 상상해보면 너무 아름답습니다.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기쁨이 가득합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사랑이 가득합니다. 치료와 회복이 있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감사가 넘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입니까? 얼마나 즐거운 모습입니까? 여기가 천국 안일까요?
우리교회가 이런 예수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런 행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께 LINK된 우리 가정 안일까요?
이런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 겔47:9에보면 <살고> <되살아나겠고 >< 살 것이며> 이 말은 히브리어로 <카야>입니다. <카야>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죽게 된 것이 되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카야>가 필요합니다.
<카야>의 원천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카야> 죽었던 것을 살리는 회복과 은혜가 성전에서 나오는 물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생수의 강은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생수의 근원은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요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물 질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그리스도 인 내가 샘물의 원천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 생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말합니다.
쉽게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원천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링크 되어있는 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그리스도께 링크 되어있는가? 우리의 언어가 예수그리스도께 링크되어있는가? 우리의 행동과 삶이 예수그리스도께 링크 되어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께 링크된 우리의 생각이 성령의 생각입니까?
예수님이 기뻐하실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지를 원하실까?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주님의 방법은 어떤 것일까?
예수그리스도께 링크된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성령의 감동입니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관용할 마음이 있는가? 용서할 맘이 있는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예수그리스도께 링크된 우리의 언어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말하는 것입니까?
영혼을 살리는 말을 하고 있는가? 말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가?
예수그리스도께 링크된 우리의 삶이 행동이 복음의 말씀으로 적용되고 구별된 행동인가? 삶인가?
예수님을 원천에서 나오는 성령의 생각, 마음, 언어, 그리고 삶을 산다면 어느 곳으로 가든지 <카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도 말입니다.
여기서 조심 할 것은 영적인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견인 할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사람으로 능히 건널 수 없는 강이지만, 헤엄 칠만 물이라고 합니다.> 수영을 하려면 먼저 몸에서 힘을 빼야합니다. 그리고 물의 부력을 의지해야합니다. 그래야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서 성급히 조바심을 내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우리를 회복하고 치유하고 살리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조바심일 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견인 하도록 기다리는 데 그러나 나를 상처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일이 없는 듯이 오히려 더 득세를 합니다. 이때가 가장 힘듭니다. 하박국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박국 선지가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악이 난무했습니다. 불의 가 난무했습니다. 사회가 너무 악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방치 하십니까?항변하니까? 하나님이 좀 기다려라 내가 이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이용해서 악을 심판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이렇게 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선지가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더 혼미해진 것입니다.
왜 야하면 바벨론은 유다 민족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악을 심판하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더 악한 것을 사용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나를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무라고 대답하십니까? 조금해 하지 말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가 벨론으로 유다백성을 심판하는 것으로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바벨론을 가마두지 않겠다. 계획하고 있다 기다려라 하십니다.
합2: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래서 하박국선지가 하나님께 궁금한 마음, 섭섭한 마음 이해 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악이 득세하는 불편한 진실을 하나님께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해결이 되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하박국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합3: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바뀐 것이 안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은 가장 강력한 부흥은 하나님이 일하심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것입니다. 비롯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박국에게 전달이 되었지 때문에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겔47:9 말씀처럼 이르는 곳마다 이르는 각처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성숙함이 있어야합니다.
말씀을 심는 가족 책에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한 길,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상황을 말씀과 기도로 직면하는 부모의 모습 속에 자녀의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내가 자녀들에게 과연 어떤 부모로 비춰지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행복에도 '유전자'가 있습니다. 그 유전자는 <성경말씀을 적용해서 사는 본>이 행복유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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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나눔 :
우리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우리 가정은 예수그리스도께 LINK된 우리 가정인가?
당신의 가정은 어떤 면에 카야의 역사를 갈급해하십니까?
당신의 생각 마음 언어 그리고 삶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조바심 낸 적은 없습니까?
당신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성숙함으로 이를 곳과 각처는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