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Q.T sharing복음을 삶으로 살아낼 우리(요일4:11-16)
목장 Q.T sharing복음을 삶으로 살아낼 우리(요일4:11-16)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말씀이 각장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계속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을 믿는 것과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믿는 것 통합해보면 예수님이 말씀이다, 말씀은 곧 복음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가 곧 복음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복음이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후3:3에 곧 여려분과 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쓰신 그리스도의 편지 즉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쓰신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삶으로 살아 내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사명이 분명한자는 예수님께로만 삶을 집중시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성령님인도 하시는 말씀에 내드리는 삶을 갈망합니다. 복음에 내 삶이 사로잡히면 오직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그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보고 예수님처럼 가르치고 예수님처럼 섬길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삶으로 살아 내야하는 사명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복음을 삶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각장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재의 모습을 봅시다. 우리가 서로 마땅히 사랑하고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왜 사랑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용서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 안일까요?<용서는 한계가 없다. 끈임 없이 용서해야한다.>라는 의미로만 받을 때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화해가 보증되는 것은 안입니다. 용서는 단독으로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내안에서 내가하는 일이다. 용서의 과정은 다른 사람의 관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과정에 우리를 참여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단독으로 그 일을 수행 하셨습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엄청난 우리의 죄는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값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너의 허다한 죄를 갚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결코 묻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가 이전까지 지었고 앞으로 지을 모든 죄악이 단번에 영원히 사해 졌습니다. 우리의 참여 없이 하나님이 홀로 모든 것을 다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영생을 무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시는 구원자와 화해의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이제 우리 각자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화해는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하는 태도를 선택할 때 시작됩니다. 화해는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으로서, 쌍방의 참여를 필요로 합니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내 쪽에서는 용서가 있어야 하며 상대 쪽에서는 그가 행한 잘못에 대해 회개하는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지만, 화해는 상대자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끈임 없이 용서해야합니다. 그를 용서하신 하나님과 화해를 선택할 때까지 말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 회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끈임 없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 용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들을 선대하고 욕하는 자들을 축보하고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이중 어느 것도 쉽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를 실천할 때 상황과 관계가 완전히 변할 수 있습니다. 설령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변할 수 있습니다.
적용 나눔 --------------------------------------
*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상대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그를 대하는 당신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 용서를 생각해 본적은 있습니까?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입니까?
* 상대가 회개와 참회를 선택할 때까지 어떻게 선대하고 어떻게 축복하고 기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