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동역자로 사는 우리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천하게 대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 모습이 이름 없는 자 같지요, 죽은 사람 같이 징벌을 받은 사람같이 보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복음을 전하는 사도입니다. 보배 되시는 예수님이 내안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기쁩니다. 너무 만족합니다. 저는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신앙의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바울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신앙을 드려 낼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이니까, 그런가요? 만약 그렇다면 성경은 위인전입니다.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연속선상의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이 작동해야합니다. 바울이 그러했으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여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간섭을 받아야할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으면 일을 못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홀로 충분히 하실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함께”는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소명과 사명으로 일하면 번 아웃 됩니다. 소명과 사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서로 대함에 있어서 군림하거나 좌지우지하지 말고 오히려 먼저 항상 섬김의 자세와 마음으로 일관해야 한다. 각종 행정이나 모임에 있어서는 성령께서 평안히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인생의 교과서로 삼고, 스승 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100% 죄인이며 하나님은 100% 옳으시다는 믿음으로 주시는 구속사적 해석에 순종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본받고, 서로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반드시 이뤄내신다는 약속을 헛되게 받자 말아야합니다. 이 은혜를 헛되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 우리라고 시련이 없겠습니까? 근심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할 때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기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근심합니다. 바울은 고후7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낙심하게하고 정말하게 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름 받은 자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내신다“를 붙잡고 하는 근심입니다.
적용 나눔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어떻게 관계해야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지금의 상황을 보면 어떤 변화가 있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