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엘리야의 삶을 보면서 다시금 신앙을 점검하고 복음에 분명한 태도를 가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을 갈멜산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그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서 백성에게 먼저 다가가시고 손 내미시고 가까이 하십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 백성들의 상태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 숭배 사이에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풍요를 주는 것이면 하나님도 믿고 바알도 믿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비틀거리는 모습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엘리야는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머뭇머뭇 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인 동의를 해야만 합니다. 그 동의가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100% 옳습니다.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겠습니다.”라는 것이 말씀에 대한 분명한 태도입니다. 점잖은 듯 침묵하지 마십시오.“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했습니다. 침묵은 믿음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입술로 “아멘”으로 선포해야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삶의 순종으로 아멘 해야 합니다.
둘째, 예배 회복입니다.
오늘 날도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가 주도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를 합니다. 찬양을 합니다. 열정은 있으나 그러나 다 가짜예배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의 주관하심이 회복하는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대결도 하나님이 주관하심이 살아있는 예배와 거룩한 임재하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야가 12개의 돌을 취해 단을 쌓는 것도 무너진 예배를 하나님이 주관하는 예배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예배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렇게 손들라고 하는 거야, 기도는 왜 그렇게 길어, 뭘 그렇게 따라하는 많은 거야” 여러분 정말 예배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면 이런 예배의 태도가 가능하겠습니까? 설교도 하나님의 주관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듣는 이도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내게 주신말씀으로 받아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엘리야처럼 다음세대를 위해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입합니다. 인생의 도량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말려 버리십니다. 이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주 하나님이하셨습니다!" 고백하게 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적용 나눔 : 한 주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분명한 태도로 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