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라는 논쟁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문제의 해결을 예수님께 의뢰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기 위해서 한 어린이를 불러 중심에 세우셨습니다. 특별히 ‘어린아이’는 집안에서 부리는 몸종과 같은 하인을 일컫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 집에서 세울 수 있는 가장 작고, 낮은 아이를 세워 ‘누가 더 큰가?’라는 물음을 ‘누가 더 작은가?’의 역설적 방식으로 가장 작고 낮은 존재인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음’과 ‘낮음’ 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제자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돌이켜’라는 동사입니다.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 곧 ‘회개’를 뜻합니다. 동시에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것과 연결하면 마19:14절에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입니다.
CS루이스는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 이니라”는 의미는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들을 의미한다.
마치 팔복의 처음과 마지막 복에 나온 표현과 같다.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절대 의존적인 아이들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를 의미하고
마지막 팔복처럼 그들이 천국을 허락받는다.
“어린아이와 같음”은 결국은 팔복의 삶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애통하는 자처럼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겸손 하여,
온유한 자처럼 오직 말씀대로 살아라.
의에 주린 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처럼 고통 받는 자와 함께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처럼 늘 자신을 살피고,
화평하게 하는 자처럼 모든 결론이 화평이 되게 하라.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처럼 나도 박해 받을 수 있다는 팔복의 삶입니다.
❝팔복의 삶은
우리의 어떤 외상도 상처도 이길 수 있는
기쁨의 용량과 즐거움의 용량이 충만케 합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팔복의 삶으로 천국의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눔 : 팔복의 삶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