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0:7-13
기도의 능력은 추측을 불허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만큼 크기 때문이다. 기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전 출입금지 블랙리스트 명단에 있던 예레미야가 성전출입 금지명령 위반혐의로 체포했고 태형을 가한 후 감옥에 가뒀다. 절망에 빠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통곡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이 외치라하는 데로 선포했는데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을 당합니다. 모욕거리가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립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고. 나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이제는 주님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싶지 않습니다. 주님 왜 나를 속이셨습니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가게 하는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인즉 “그들이 나를 치나 나를 이기지 못해 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신다.” 이 불같은 말씀에 붙들리어 기도한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힘센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불같은 말씀 붙들려 기도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예레미야는 40년 넘게 사역을 하면서 여려번 죽을 고비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수많은 사람들로 저주와 모욕을 당해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불같은 말씀에 붙들려 기도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느낌을 의존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관계에 의존해야한다. 주님의 관계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일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영혼을 품고 기도할수록 영혼 사랑이 뜨거워지고 영혼 사랑이 뜨거워질수록 더욱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다. 연역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은혜를 주신다.
예레미야의 기도를 묵상하면서 무릎사이고 머리를 묻고 기도하는 엘리야가 떠올랐다.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 그가 기도한즉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왔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비가 필요하다. 성령의 단비가 내리지 않는 교회(가정)는 바싹 말라버린다. 이런 교회에서는 생명의 싹이 돋아날 수 없다. 우리의 공동체에서는 회개의 눈물이 말라버린다. 은혜와 사랑이 식어버린다. 비거덕거림과 시기와 불평이 발생한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기도하여 성령의 단비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
맥추감사주일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이름은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다.
칠칠절의 의미는 출애굽 후 7주 후에 내산에 도착해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주 동안 매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며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한다. 50일째 되는 날은 오순절인데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구원 받은 자임을 보증하신 날이다. 즉 성령의 단비가 충만한 절기이다.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 회개의 눈물과 은혜와 사랑이 풍성함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기도는 하나님만큼 크다. 기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
기도는 하나님만큼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단비를 불같은 기도로 회개와 사랑 그리고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와 가정이 되기를 축복한다.
적용 나눔 : 당신은 불같은 말씀 붙들고 성령의 단비가 충만히 내리도록 기도하는가?
공동체와 가정에 회개와 사랑 그리고 은혜가 넘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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