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에 대한 해석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포로귀환해서 지금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이 어떤 상태에 있으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유대인들은 이 거룩한 제물을 옮길 때 옷에 싸서 옮기곤 했는데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은 이 거룩한 고기를 싼 옷의 자락이 다른 물건에 닿았을 때 그 접촉만으로 닿은 물건이 거룩한 성물이 될 수 있느냐?제사장은 “아니다” 답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어 구별하신 것만이 거룩한 성물이 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반대로 이런 보통의 물건들에 거룩한 고기 대신 시체 같은 부정한 것을 만져서 종교적으로 더럽게 된 자가 만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제사장의 답변은 부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질문과 답변을 연결해 보면 그것은 어떤 물건이 접촉에 의하여 거룩해질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부정해 질 수는 있다. 그러면 이 질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려고 하는 것은 한번 죄로 엎질러진 물은 그렇게 쉽게 담아지지 못한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칠십 년 포로 생활로 자신들의 죄가 다 청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그들은 부정한 자들이며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열심히 예물을 바치고 있지만, 회개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정한 것을 드려내십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드려내십니다.
우리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드려내십니다.
우리의 혐오와 불신 그리고 원망과 불평을 드려내십니다.
신천지의 거짓과 은밀 은폐를 드려내십니다.
결탁과 검은 돈과 어두움을 드려내십니다.
우리 주변의 잘 못된 신앙관을 드려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를 드려내십니다.
이런 잘 못된 신앙관에 빠지면 다시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런 영적인 독소를 해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접촉하는 곳에는 아무 많은 세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고 먹었던 음식에 많은 세균이 있어서 복통을 일으키기거나 혹은 식중독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는 더욱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죄가 되는지 아니면 해도 괜찮은 것인지 몰라서 유혹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유혹에 한번 빠지면 식중독 정도가 아니라 그 영혼이 심히 무서운 병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 이런 영적인 독소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규정을 세워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시체에는 많은 병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씻고서 집에 들어오게 했으며 하루가 지나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그 병균으로부터 보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저절로 죽은 짐승은 세균이 많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하여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그런 짐승의 시체를 만진 자도 다른 사람을 접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위생적이면서도 영적인 교훈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에 대한 율법의 정신은 격리입니다.
적극적으로 정결하게 할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대로 부정한 것의 영향을 줄이려면 접촉하지 않게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율법의 정신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큰 충돌로 나타나게 됩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밖에 나가서 생활하다 보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부정한 것과 접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을 뿌리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 같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다녀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접촉하는 버스 손잡이나 공중전화기 등에는 엄청난 세균들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위생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도대체 당신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친 거요?” 하는 식으로 힐문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가진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음식이나 위생적인 불결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욕망과 악한 생각들과 더러운 충동들이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정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위생적인 불결을 교훈으로 해서 우리의 영혼도 이런 불결한 것에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쳤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 마음속에 있는 죄 성은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으므로, 율법은 일시적으로 외부적인 자극을 차단함으로 죄가 더 퍼지지 않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율버의 정신은 격리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 안에 있는 이 죄를 치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을 씻는 훈련을 시키는
대신에 바로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그들의 영혼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어느 마을에 전염병이 퍼져서 사람들이 많이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긴급하게 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마을 사람 전부가 병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누구를 격리시키며 누구는 함께 있는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좀 더 병든 자와 덜 병든 자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병원을 세우고 의사가 와서 치료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밀한 사귐이 있어야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복음의 은혜를 누려야합니다. 그래야 병들었던 영혼이 침체된 영혼이 생기를 얻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영혼의 치료자 이신 예수그리스도께 간섭을 받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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