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1LINK하나님의 경륜 에베소서5장22절
성경 :엡5:21-33
제목 : 우선순위
본문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하우스타펠른’이라 부른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의 대가족적인
‘집’(household)의 구성원들을 위한 일련의 규정들(5:21~6:9) 중 한 부분이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이 ‘집’은(참고, 행 10:2) 부모와 자식의 직계관계를 넘어서 그 생활 영역에서 동거하는 노예들을 비롯하여 가속(家屬)들 전체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가구(家口)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 가구 내의 기본관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5:22~33), ‘부모와 자식’(6:1~4), ‘주인과 종’(6:5~9)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본문은 이 기본관계 중 첫째를 구성하는 부부 사이의 당위 규정을 제시한다. 그 요지는 단 한 번을 읽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5:33)이다.
대전제 : 그리스도 경외와 상호 복종(5:21)
그러나 이 요지의 기둥이 서 있는 바탕 개념을 망각하면 그 참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기초는 이 가구범절(家口凡節)을 시작하는 21절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즉 ‘아내의 남편 복종’(22~24절)보다 상위 개념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상호 복종’ 규범(21절)이 본 단원의 표제로 우뚝 서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 5장 21절의 역할
그래서 본문의 정당한 독해를 위해서는 21절의 위치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성령충만을 명하는 앞의 18~21절의 마감인 동시에 뒤의 가구범절(5:21~6:9)을 열어주는 시작의 역할도 한다.
본문의 바로 앞에 놓인 에베소서 5장 18~21절은 성령충만의 권고(18절)와 함께 다섯 개의 분사(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 복종하라[며])를 통해 그와 관련된 행위들을 장려한다. 마지막 21절은 구문 상으로는 18절의 동사 ‘플레루스쎄’(충만을 받으라)에 걸려있어 성령충만을 받아서 이루어지는 행위들 가운데 하나로 그래서 21절의 상호 복종은 성령충만의 결과이며 또한 성령충만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다루고 있는 본문인 부부관계 관련 명령은 성령충만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상호복종의 한 예(例)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충만과 상호복종부부사랑’의 연계성과 인과관계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사랑의 용어로서의 복종
여기서 ‘복종’이란 말은 노예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한다. 그래서 복종은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사랑으로 정의되는 것은 신약성경 전반의 상식화된 전제다. 바울은 그 사랑을 종의 섬김개념으로 구체화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이것은 주안에서의 ‘자발적 복종’으로 사랑의 섬김이다. 사랑은 자발적 복종, 즉 자진해 이루어지는 자기포기다. 이미 에베소서 저자는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3:17) 기원했고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2)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사랑은 인격체간의 관계다.
아내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주 안에서 복종하는 것이 이 규범의 전제다. 상호복종을 권하는 21절을 전제해야 22절이 제대로 읽힌다.
아내의 복종 사랑(5:22~24)
21그리스도의 경외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라.
22아내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23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몸의 구주이시다.
24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 있어서 남편들에게.
한글개역성경에서는 22절과 24절, 두 번에 걸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을 살펴보면 이 두 경우 사실상 동사가 생략되어 있다. 즉 22절에서 아내의 복종은 21절에서 언급하는 ‘상호간의 복종’의 의미에서 이루어지는 복종이 된다. 마찬가지로 24b절에서의 복종도 24a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복종’의 의미에서 이루어지는 복종이다.
아내의 복종은 21절이 정의한 대로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하는 복음의 새 질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깊은 사랑의 복종이다. 아내의 복종은 24b절이 정의하는 대로 구속을 입은 교회가 구주 되신 그리스도를 자발적이고 깊이있게 사랑하는 것과 같은 성격의 아름다운 순종이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도 역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설명된다(23b). 여기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됨은 교회를 위해 ‘구주’(savior)가 되어 주심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셨고 또한 그렇게 하여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희생적 사랑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 절대적 복종을 선언한다.
아내는 그리스鈞罐?사회에서의 규범 안에서 당연히 남편에게 복종한다. 그러나 그리스鈞罐?세계는 그 복종을 받아들이는 남편에게 ‘구속주’의 구실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에베소서는 유추를 통한 간접적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남편에게 자신의 생명을 바쳐 아내를 구하는 구속주의 역할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아내의 복종을 말한다.
남편의 고비용(高費用) 사랑(5:25~32)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해야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은 자기 생명 전부를 완전히 교회를 위하여 주시는 사랑이었다. 자신을 포기하는 사랑이었다.
아내의 복종을 받는 남편은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생명을 바쳐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이 되는 마음과 실천하는 사랑으로 아내를 정성껏 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것은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신부로 흠없고 순결하게 준비하여 자신과 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26~27절). 그리스도는 자신을 교회에 주심으로써 교회를 성결하게 하신다(聖化, ‘아루텐 하기아세’). 이는 신부로 삼고자 하는 목적으로 깨끗하게 구분해 놓는 모습이다. 성화(聖化)를 위해서 말씀 안에서 물의 씻음으로 순결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물의 씻음’은 세례를 가리키고 ‘말씀’은 세례자를 향해 낭독되는 세례 선언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몸을 돌보아야 하는 머리가 되어(28~30절)
이렇게 해서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이처럼 아내는 남편의 몸이 되었기에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비밀 하나 더 추가 - 한 몸 사랑(31~32절)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신부로 예비하여 취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렇듯이 당신의 아내도 당신의 몸 자체다. 그러니 아내를 자기 몸 사랑하듯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내 사랑은 자기 사랑이다. 이제 결론으로 교훈의 요약만 다시 확인하면 된다.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라”(3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