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3LINK복음의 기쁨 빌2장
성경 : 빌립보서2:1-18
제목 : 삶의 모범 예수그리스도1
예수님의 우리의 삶의 표상입니다.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표상이시다. 겸손한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겸손한 마음이란 '한마음'을 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한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위해 한마음을 품어야 한다. 자기의 색깔과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아를 죽이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지 않고 한마음 되는 것. 이것이 겸손한 마음이다.
또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기 위해 얼마나 광고를 하고 자랑하고 신경을 쓰고 있는가?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면 좋아하고, 자신을 깔보고 멸시하면 얼마나 속상해하는가?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그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겸손은 '남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일도 책임 있게 처리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남의 어려움과 남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도와주고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갈 6:2, 5).
바울은 5~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통해 겸손한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본질상 신성을 영원히 가지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으로서의 영광과 특권을 다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로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사람이다(요 1:1, 14).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인성(人性)을 가지신 분이다(고후 5:21 : 히 4:15). 그런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심으로 겸손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자발적으로 택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언급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동체입니다(1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일치와 연합을 강조했습니다(2절). 당시 빌립보교회 안에는 성도들 상호간에 불일치와 다툼이 있었습니다(참조, 4:2).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교회는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다툼과 허영입니다(3절). 교회에서는 당 짓는 일을 삼가야하는데, 사람들은 당을 지어 교회의 하나 됨을 해칩니다. 허영도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합니다. 허영은 자신의 인간적 영광을 구하는 것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허영이 있는 사람은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의 이익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합니다. 허영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좇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훼손합니다.
성령의 하나 되는 공동체는 이러한 다툼과 허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겸손한 마음'을 제시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유익을 배려합니다(4절). 겸손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는 겸손으로 충만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주장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허영과 다툼으로 공동체는 상처를 입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공동체를 만들려면 우리가 더욱 낮아져서 서로 겸손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좇으라
바울은 겸손한 공동체를 위해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합니다(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셨습니다(6절).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자기를 더 낮추셔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겸손을 좇아가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7절). 무엇보다 세속적 욕망인자기 영광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그리스도는 기꺼이 사람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더 낮아지셔서 십자가에 달리사 굴욕과 모욕을 감내하셨습니다(8절).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함으로 그분의 겸손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했기에 그분의 겸손은 완전합니다. 온전한 순종이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참된 겸손이 아닙니다.
한편 하나님은 겸손한 예수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주십니다(9~11절).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찬양합니다.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참영광을 돌리신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으십시오.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본을 좇을 때, 우리의 공동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좇으라(12~15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삶을 권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는 삶입니다(12절).
구원의 여정은 3단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적 구원이 있고, 현재적 구원이 있으며, 미래적 구원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보배 피를 흘리셨으니 그 예수를 믿었던'나'는 구원받았다. 또한 복음을 믿어 현재 구원받은 상태다. 더 나아가 구원의 여정을 걸어가 하늘나라 갈 때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 그러면 현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 구원을 이룬다는 말이 아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구원의 시작도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구원의 완성도 하나님이 하신다. 따라서 "구원을 이루라(12절)는 말은 성화(sanctification)되어가라는 의미다. 그 첫 번째 모습이, 은혜 받은 자로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항상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세라는 말이다. 성화되어 가는 두 번째 모습은, 모든 일에 구원받은 자녀들로서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하는 것이다(13~14절).
빌립보 성도들은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구원 얻은 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의무입니다. 구원 얻은 성도는 이미 얻은 구원에 맞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매진해야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삶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거룩한 소원을 주십니다(13절).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 거룩한 소원을 주셨기에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도우십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분열과 다툼이 있었습니다(14~15절). 그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훈련을 합니다. 비록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성숙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악하고 죄를 범하는 옛사람의 본성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어두운 세상에서 불러내주신 것은 이 세대의 악함에서 구별되어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을 향한 달음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순종으로 계속됩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의 여정을 온전히 마치시길 바랍니다.
성화되어 가는 세 번째 모습은,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성을 지닌 존재지만,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아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갈 5:24),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며 살고자 힘써야 한다(롬 8:13). 성화되어 가는 네 번째 모습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다(16절). 생명의 말씀은 '복음'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붙잡을 뿐 아니라 열심히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