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09:26-31
평정심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평안함을 유지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부활신앙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강이 평정심을 가지게 한다. 평강을 히브리어는 ’샬롬‘이요 헬라어는 ’에이레네‘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날 때 하신 말씀은 ‘너의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예수님의 평강이 있게 된다.
다윗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시험을 많이 당한 사람도 없다. 아버지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장인인 사울에게서 배신을 당했고, 아들인 압살롬에게서 배신을 당했고, 아내였던 미갈에게 배신을 당했고, 충복이었던 요압장군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다윗은 그 심정을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한다. ‘그들은 나를 보고 입을 열고, 혀를 놀려서 거짓말로 나를 비난합니다. 미움으로 가득 찬 말을 나에게 퍼붓고, 이유도 없이 나를 맹렬하게 공격합니다. 악으로 갚고, 미움으로 갚는다.
그리고 그들은 입에 담을 수없는 끔찍한 저주의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다윗이 안다. 우리가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뚜껑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하면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다윗의 모습이다. 그들의 저주 기도를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로 끌어 앉고, 이렇게 기도한다. ‘나는 그 기도 때문에 가난하고 빈곤합니다. 내 마음이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석양에 기우는 그림자처럼 사라져가고, 놀란 메뚜기 떼처럼 날려 갑니다.’ 금식하면서 무릎으로 기도로 품는 다윗이다. 어떻게 이런 평정심이 가능할 가?
이런 평정심은 한순간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았다. 그 훈련된 하나님의 평강이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킨다.
둘째, 찬양하는 믿음이다.
찬양은 잠든 영혼을 깨어나게 한다.
새벽이 오게 하고 어둠이 물러가게 한다.
하나님이 믿어지고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신앙에 뿌리내리게 되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게 된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있는가? 억울한 일이 있는가?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란다.
우리 안에 평정심인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가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아 알게 된다.
적용 나눔: 힘들고 억울할 때 첫째 것을 선포 되새김해보자.
그리고 평강을 주실 때까지 찬양을 해보자
하나님의 동역자 훈련 때 서울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 사모님의 고백입니다. 하루는 함께 일하는 한 사람이 보낸 묵직한 우편물 한 통을 받아 읽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습니다. 다섯 장이나 되는 그 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숙인들을 빙자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나쁜 도둑’이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구절구절이 비수처럼 마음을 난도질하였습니다. “그것은 피를 거꾸로 솟아오르게 하는 능욕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반론을 적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론을 써보니 열다섯 장이 되었답니다. 일반 편지 봉투에 넣을 수 없어 서류 봉투에 넣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봉투를 풀로 붙이고 우표만 붙이면 되는데 주님께서 조용히 물으시더랍니다. “딸아! 그렇게 할 말이 많더냐?"
순간 멈칫하며 두툼한 봉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또 말씀하셨답니다. “나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느냐? 그러면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게 하시더랍니다.
찬송311장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썼던 열다섯 장의 편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보름쯤 지났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어요." 그는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금 나의 가장 신실한 동역자로 내 곁에 와 있다.
공부해서 남 주자, 세상을 변화시키자? 슬로건으로 한동대학을 이끌었던 김영길총장이 아시는 것처럼 지난 6월 30일 소천했습니다. 19년동안 총장으로 그이후로도 그 고백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려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십니다. 그러면 빠지지 않는 고백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에서 한국KAIST교수 부임하는 것도, 그리고 한동대 초대 총장으로 부임하는 것도, 재직 중에 잘못된 고소고발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를 중에도, 불같은 시험을 당하나 하나님이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딸을 암으로 먼저 보내는 아픔에도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을 이뤄가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것은 증명되었다"며 우리 모두를 부활의 생명으로 완성하십니다.
김영길 총장은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죽어도 삽니다. 내게 죽음은 기쁨입니다.” 하며 큰소리로 부활의 소망을 밝히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해 할 수 없는 인도하심, 그리고 고난과 아픔 그리고 죽음이라는 두려움 가운데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가요? 나는 죽어도 삽니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 부활신앙이 주는 평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