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2LINK 복음을 믿는 신앙 <<로마서>5>
화평을 누리는, 우리 롬5:1-11
로마서 4장까지는 바울이 강조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입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탓할 때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결론적으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 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내적으로 평안하게 되고 외적으로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의 즐거움이 있을 까요? 어떤 삶을 기뻐할까요?
첫째, 예배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은 예배를 드리는 것을 즐거워한다. 동시에 예배하는 중에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은
그가 예배에서 즐거움을 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배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만날 갈망이 충만한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감으로 설렘이 있는가?
이런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둘째,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서 말하는 환란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지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대충 세상에 맞춰 살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말씀대로 살겠다고 해서 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런 일상을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환난 가운데 성품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품이 변합니다.
그래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고 합니다. 연단이 무엇인가?
인격과 성품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중에 적는 환란을 인내하면서 연단 받아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즐거움이 있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적용 나눔 : 예배하는 중에 어떤 기쁨이 있는가? 말씀대로 사는 즐거움이 있는가?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 생명을 소중이 여기는 의사와 돈만 아는 악한무리들과의 싸움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긴다. 내용입니다. 대사 하나 하나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대가되고 기다려지고 미리알고 싶어서 예고된 글을 읽어보곤 했습니다.
도대체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일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다리고 기대하고 미리 알아보곤 했을까?
예배를 이렇게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를 먼저 천국에 보내드리고 그 후로 어머님의 믿음 흔적이 너무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자매가 찾아와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준비한 헌금을 가지고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지금은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시 했지만 마음에 썩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님이 오신다기에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이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일주일 한 번씩 아버지와 함께 복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 기뻐하면서 사실은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왔는데 목사님이 바쁘신데 무리한 부탁이 될 것 같아서
안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 영혼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만큼 소중하고 다급한 것은 없습니다. 저역 자매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베드로와 고넬료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바울과 아나니가 성령으로 인도 받는 것처럼 그런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로마서1장에 보면 21가지 죄의 종목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심각한 죄다. 라고 할 수 있는 목록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성애 우상숭배 살인 추악 악의 시기 분쟁 불의 탐욕 ....등등 모든 죄가 사형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수군수군해도 사형에 해당된다.
“수군수군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우리 이런 경우 많이 있잖아요. 공동체 안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를 험담합니다.
“비방하는 자는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비난하는 것” 회의를 하거나 일을 할 때 때로는 의견대립으로 다투고 비방할 수 있잖아요.
나는 저 사람보다는 선해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아 그러면서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 다 사형입니다.
하나님은 수군수군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비방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악한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왜 수군수군하는? 왜 비방하는가?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나열된 모든 죄목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각하게 엄중하게 다룹니다.
그런데 환란 중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인내하면서 연단 받는 사람은 이런 죄의 심각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바로 돌아섭니다.
악한 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죄인들을 본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