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QT sharing LINK 경륜신앙
성령으로 통찰하는, 우리
욥18:1-21
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통찰력은 우리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통찰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통찰하느냐? 여기서 무엇은 관점입니다. 만약 우리의 관점이 왜곡된 관점이라면? 한번 관점이 왜곡되면 왜곡된 프레임으로 세상과 사람을 봅니다. 그것도 동일하게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은 얼마나 피곤하고 불행하겠습니까?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울분을 터트리면서 너는 언제 입을 다물 테냐? 제발 좀 이제라도 눈치를 채고서 그만 좀 그쳐라, 어찌하여 너는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어리석게 보느냐? 여기서 “짐승”은 히브리어로 “베혜미”라고 합니다. 의미는 “통찰력이 없는”라는 뜻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우리를 통찰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느냐”입니다. 통찰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왜곡된 통찰도 문제입니다. 빌닷은 그 외의 친구들도 자기중심이 가득한 통찰이었습니다. 자기중심은 왜곡된 통찰력과 편향적인 통찰력을 만들어냅니다. 자기중심적 통찰력과 편행적인 통찰력은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을 냅니다. 혈기를 부립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다치고 힘들게 합니다. 자기만의 이야기로 꿰어냅니다. 악인이라고 정죄하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뽑힐 것이다 하면서 저주의 이야기로 꿰어냅니다.
❝무엇으로 통찰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욥은 영적실마리를 놓지 않고 극한 상황을 통찰을 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주님께서는 나를 아십니다.”“주께서 나에게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이런 영적 실마리를 붙잡고 지금 상황을 통찰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개자 되시어서 고난을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해결 하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통찰력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욥은 이 모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보증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영적통찰력으로 그분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다. 우리의 변호자이시고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 중재가 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통찰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당파 싸움으로 대립과 분쟁으로 몸살을 알고 있을 때, 교인들이 사도바울의 사도 성을 의심하면서 바울을 매도하고 비난하고 모욕할 때 오직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찰합니다.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인도 받아 서로 영적으로 통찰할 것을 말씀합니다. 왜요. 우리서로 성령으로 통찰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 있습니다. 다른 가치관 관점이 있습니다. 다른 삶이 있고 다른 습성이 있습니다. 다르다고 해서 정죄하면 분열과 다툼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으로 서로 통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서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한결같이 우리는 예수님의 양 됨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려분!성령으로 통찰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눔 : 성령으로 통찰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