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고 교제로 매우 친분 있는 관계이고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친분관계인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과 친분관계를 접대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입니다. 많은 음식준비로 마음이 산만해진 탓에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대접하는 것이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41-42)”말씀처럼 많은 음식준비로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많은 음식을 준비함이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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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밀하고 친분 있는 관계라면 예수님께 집중해야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친분 관계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집중하게 합니다. 찬양대는 물론 음악성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찬양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만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은혜와 모습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라도 하나님께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자제해야합니다. 교회에서 봉사와 섬김은 예수님께 접촉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역은 말씀의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사역이 하나님께 집중에 방해가 된다면 잠시 멈춰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둘째, 더 좋은 것을 택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언니 마르다보다 동생 마리아가 더 좋은 것을 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0:42) 우리가 하는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좋은 것도 나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좋은 편을 택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집중하여 듣기를 원하셨고 기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다가 하고 있던 일이 유해하거나 사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마르다는 좋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접으로 인한 분주함이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에 방해된다면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문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매우 중요한 일이어도, 분주하고 초조하고 산만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원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집중하면서 선택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종류의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통해 주님과 친밀하고 친분 있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눔 :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