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QT sharing LINK 종교개혁신앙
이해를 뛰어넘어 믿음으로, 우리
욥11:1-11
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소발은 두 친구들의 견해와 관점을 들었습니다. 두 친구의 이해된 주장만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발에게도 욥에 대한 평판이 만들어졌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경륜의 신앙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욥에 대한 세평이 만들어졌습니다. 소발은 욥에 대한 세평으로 욥의 탄식을 폄하합니다. “욥아 말이 많구나, 말 많은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없다. 욥이 자신을 변론하는 것을 욥아 네가 자랑을 늘어놓는 구나 그러니 내가 어찌 잠잠할 수 있겠느냐? 욥아 아직도 네 죄를 깨닫지 못하는 구나” 욥의 탄식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신앙을 놓치면 모든 것을 이해되는 선에서만 받아 드리고 수용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이해 안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둡니다. 이해되는 선에서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 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이 무지입니다. 어리석음입니다. 여기서 왜곡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를 폄하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신앙을 붙잡고 사는 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정하심과 계획 그리고 목적 있음을 신뢰합니다. 그러는 중에 고난을 당합니다. 시험을 겪습니다. 어려움을 만나지도 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는 중에 경륜신앙을 붙잡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하심이 있음을 믿고 믿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이해 밖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해를 뛰어넘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욥이 그러했습니다. 주신자도 여호와시여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얼마나 놀라운 확신입니까? 그런데 욥이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이해하고 고백했을까요? 아니요 이해 못했습니다. 그냥 욥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해 밖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뤄내신다.❞
❝그냥 믿는 신앙은 이해밖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객관적인 신앙이 주관적인 신앙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욥은 이해 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고난 중에 있지만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고 만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나님” 그러면서 “모든 지혜와 권능도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 그러므로 오직 나는 하나님께 말씀 드리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결국 욥은 귀로 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주관적인 신앙세계입니다.
적용 나눔 : 내가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