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및 함께 고백하는 기도 :
주님, 내 눈 열어 주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하소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소서.
성령 안에서 구속사적 해석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부활을 부인하고 거짓으로 부활을 가리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던 사람들이 오히려 부활의 증인이 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확인하면 할수록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그저 교리로만 믿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들어서 아는 수준에서 만족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나도 부활로 연결을 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예수님의 무덤을 입구를 막고 있는 돌문을 굴려냅니다. 돌문이 열려야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문이 열려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한다.” 것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을 “날 살리신 주님의 은혜”라는 신앙으로 살게 하는 동력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돌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활을 역사적으로 믿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돌문이 꽉 굳게 닫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는 말씀처럼 우리 마음의 돌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 부활을 믿으면서도 마음의 돌문을 굳게 닫고 있습니다. 그저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부활했다. 정도입니다. 교리 신앙입니다. 생명력이 없습니다. 오늘을 “날 살리신 주님의 은혜”라는 신앙으로 살게 하는 동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하는데도 죄책감과 정죄감에 시달립니다. 아무런 감동도 기쁨도 감사도 없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 부활, 나도 부활 한다”를 믿지 못하게 하는
굳게 닫진 돌문은 무엇인가요?
“죽으면 끝이다”라는 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다’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염세적인 생각으로 허무주의에 빠지지 게 됩니다. ‘난 왜 이 모양일까?’ 하는 비교의식, 열등감, 좌절감에 시달리며 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들은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사도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궁극적으로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부활 나도 부활”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눔 : 당면한 현실을 “예수부활 나도 부활”이라는 신앙으로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